2026-05-29 · 김도영 (선임연구원)

표적 단백질 분해제(PROTAC)란 무엇인가: 몰레큘러 글루·아비나스 ARV-471·유빅스까지 2026 차세대 신약 모달리티 완전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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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 단백질 분해제(TPD, Targeted Protein Degradation)는 기존 저해제(inhibitor) 중심의 신약 패러다임을 뒤집는 모달리티입니다. PROTAC과 몰레큘러 글루(Molecular Glue)는 표적 단백질에 결합해 활성을 막는 대신, 세포 안의 분해 시스템(유비퀴틴-프로테아좀)을 호출해 단백질 자체를 분해해 버립니다. 2026년 현재 아비나스(Arvinas)의 ARV-471(vepdegestrant)이 유방암 3상 데이터를 공개했고, 한국 유빅스테라퓨틱스·핀테라퓨틱스도 임상 단계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PROTAC의 분자 구조와 촉매적 작용, undruggable 타깃 공략의 의미, 글로벌·국내 임상 현황을 한 번에 정리합니다.

목차

PROTAC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

2023년 가을, 한 글로벌 빅파마의 한국 메디컬 어페어즈 담당자가 사내 세미나에서 PROTAC 이야기를 꺼냈을 때 회의실 분위기가 묘했습니다. "기존 약은 효소의 활성 부위에 들어가 일을 못 하게 만드는 거잖아요. PROTAC은 그 단백질을 통째로 끌고 가 분쇄기에 넣어 버리는 약입니다." 슬라이드에는 두 개의 작은 분자가 긴 링커로 연결된, 마치 아령처럼 생긴 화학구조가 떠 있었습니다.

당시 임상약사 한 분이 손을 들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약 한 분자가 표적 단백질 하나만 처리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분해가 끝난 뒤에 다시 다음 단백질을 끌고 갈 수 있다는 건가요." 발표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순간 회의실에 짧은 침묵이 흘렀습니다.

이 촉매적(catalytic) 작용은 PROTAC을 단순한 신약이 아니라 새로운 약리학 카테고리로 만들어 주는 핵심 특성입니다. 기존의 저해제는 한 분자가 한 표적과 1:1로 결합해 활성을 막는 occupancy-driven 방식이지만, PROTAC은 한 분자가 여러 표적을 차례로 분해하는 event-driven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약물의 농도를 낮춰도 효과가 유지될 수 있고, 일부 경우 저해제로는 풀리지 않던 약물 내성 문제도 우회할 수 있다는 점이 임상 개발자들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저는 그 세미나 직후 한 회사 IR 자료를 다 뒤져 봤는데요, 흥미로웠던 것은 글로벌 빅파마들이 임상 2상 단계에서 라이선스를 사들이는 가격이 통상 항암제 대비 약 1.7배 수준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시장이 이 모달리티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 주는 숫자였습니다.

기존 저해제 패러다임의 한계와 분해라는 발상

지난 40년간 저분자 신약 개발의 주된 무기는 효소 저해제(enzyme inhibitor) 또는 수용체 길항제(receptor antagonist)였습니다. 단백질의 활성 부위(active site)나 결합 포켓(binding pocket)에 강력하게 결합해 그 단백질이 일을 못 하게 막는 방식이죠. 이마티닙(글리벡), 게피티닙(이레사) 같은 표적 항암제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풀리지 않던 80%의 문제

문제는 인간 단백질의 약 80%가 이런 전통적 저해제로 공략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학계는 이런 단백질을 'undruggable target'이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으로 KRAS 같은 RAS 계열 단백질, MYC·BCL6 같은 전사인자, IRS1 같은 스캐폴드 단백질이 그 예입니다. 이들은 명확한 결합 포켓이 없거나, 결합 포켓이 너무 얕거나, 단백질-단백질 상호작용으로만 기능하기 때문에 저해제 설계가 매우 어렵습니다.

분해라는 다른 접근

PROTAC의 발상은 전혀 다릅니다. 표적 단백질에 약하게라도 결합할 수 있는 자리만 있으면 됩니다. 거기에 결합한 뒤 세포 내부에 항상 작동 중인 유비퀴틴-프로테아좀 시스템(UPS, Ubiquitin-Proteasome System)을 표적 단백질 옆으로 끌어다 놓으면, 세포가 알아서 그 단백질에 유비퀴틴 꼬리표를 붙여 26S 프로테아좀으로 보내 분해해 버립니다.

활성 부위에 정확히 들어맞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신약 개발자들에게 새로운 자유도를 주었습니다. 저해제로는 절대 안 풀리던 단백질도 분해는 가능하다는 사실이 임상에서 하나둘 증명되기 시작했고, 학계와 산업계 모두 이 카테고리에 본격적으로 베팅하기 시작했습니다.

PROTAC이란 무엇인가: 3요소 분자의 작동 원리

PROTAC은 Proteolysis Targeting Chimera의 줄임말입니다. 우리말로는 표적 단백질 분해 키메라 정도가 되는데요. 분자 구조를 잘 들여다보면 이름이 왜 키메라인지 바로 이해가 됩니다.

PROTAC의 3요소 구조

구성 요소역할
POI 리간드(Warhead)분해하려는 표적 단백질(Protein of Interest)에 결합
링커(Linker)두 리간드를 적절한 거리·각도로 연결
E3 리가아제 리간드E3 유비퀴틴 리가아제를 끌어옴 (주로 CRBN, VHL, MDM2, IAP)

이 세 부분이 합쳐진 단일 분자가 세포 안에서 표적 단백질과 E3 리가아제를 동시에 붙잡아 3자 복합체(ternary complex)를 만듭니다. 그러면 E3 리가아제가 가까이 있는 표적 단백질에 유비퀴틴을 폴리유비퀴틴 사슬 형태로 붙이고, 표지된 단백질은 26S 프로테아좀으로 보내져 작은 펩타이드 조각으로 분해됩니다. 분해가 끝난 PROTAC 분자는 다시 떨어져 나와 또 다른 표적 단백질을 잡으러 갑니다.

촉매적 작용이 의미하는 것

이 재사용 가능성이 곧 촉매적(catalytic) 작용입니다. 임상적으로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표적 단백질의 발현량이 매우 높아도 낮은 농도의 PROTAC으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둘째, 저해제 내성을 만든 활성 부위의 돌연변이가 있어도 다른 자리에 결합해 분해를 유도할 수 있어 내성 극복 가능성이 열립니다. ER+ 유방암에서 ER 돌연변이 환자(ESR1 변이)에 대한 데이터가 이 점을 잘 보여 줍니다.

분자량과 약물 동태의 도전

다만 PROTAC은 일반 저분자 약물보다 분자량이 큽니다. 통상 700~1,200 Da로 리피니스키의 5의 법칙(Rule of 5)에서 정의하는 500 Da 경구 흡수 기준을 훌쩍 넘습니다. 그래서 경구 생체이용률(oral bioavailability) 확보와 막 투과성(membrane permeability) 설계가 개발 단계의 가장 큰 난관이 됩니다. 최근에는 양친매성(amphipathic) 분자 설계, 인공 막투과 펩타이드 도입, 흡수 보조제 활용 같은 다양한 접근으로 이 한계를 넘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몰레큘러 글루: 더 작고 더 단순한 분해 유도제

몰레큘러 글루(Molecular Glue Degrader, MGD)는 PROTAC의 사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작동 원리는 비슷하지만 분자 구조가 훨씬 단순합니다.

발견의 출발점은 탈리도마이드

흥미롭게도 몰레큘러 글루의 원형은 1950년대 입덧 치료제로 비극적 부작용을 남긴 탈리도마이드입니다. 이 약은 수십 년이 지난 뒤 다발성 골수종(multiple myeloma)에서 놀라운 효과를 보였고, 그 작용 기전을 규명한 것이 2010년 일본 도쿄공업대의 한도 히로시 교수팀이었습니다.

연구진은 탈리도마이드가 CRBN이라는 E3 리가아제 단백질과 결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후 후속 연구를 통해 레날리도마이드(레블리미드), 포말리도마이드(포말리스트) 같은 IMiD 계열 약물들이 CRBN을 변형시켜 평소에는 분해되지 않던 전사인자 IKZF1·IKZF3(아이오로스·아이카로스)를 분해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다발성 골수종에 효과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PROTAC과의 차이

몰레큘러 글루는 표적 단백질과 E3 리가아제 두 단백질의 표면 사이에 끼어 들어가 단백질-단백질 상호작용(PPI)을 유도하는 작은 분자입니다. 별도의 링커가 없고 분자량이 보통 500 Da 이하라 경구 흡수와 약물 동태가 PROTAC보다 훨씬 유리합니다.

다만 표적 단백질과 E3 리가아제 표면이 우연히 잘 맞아야 작동하기 때문에 합리적 설계(rational design)가 어렵고, 라이브러리 스크리닝과 표현형 분석에 크게 의존합니다. BiomarinX(현재 글로벌 빅파마들이 적극 추적 중) 같은 곳은 AI 기반 단백질 표면 분석으로 글루 후보 발굴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2026년 글로벌 임상 현황과 주요 후보 물질

TPD 분야는 2020년 이후 임상 단계 파이프라인이 빠르게 늘었습니다. 2026년 기준 글로벌 임상에 진입한 TPD 후보 물질이 50개를 넘었고, 그 중 다수가 항암 적응증입니다.

가장 앞선 후보, ARV-471(vepdegestrant)

아비나스(Arvinas)의 ARV-471은 ER 분해제(ERD)로, ER+/HER2- 진행성 유방암을 대상으로 3상에 진입한 최초의 PROTAC입니다. 화이자와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한 이 약물은 ESR1 돌연변이 환자에서 기존 SERD(selective estrogen receptor degrader)인 풀베스트란트 대비 무진행 생존기간(PFS)을 의미 있게 늘렸다는 데이터를 공개했습니다. 경구 투여가 가능하다는 점도 풀베스트란트(근육 주사)와 비교한 큰 장점입니다.

전립선암을 노린 ARV-110(bavdegalutamide)

같은 아비나스가 개발 중인 ARV-110은 전이성 거세 저항성 전립선암(mCRPC)에서 AR(안드로겐 수용체)을 분해합니다. 엔잘루타미드(엑스탄디), 아비라테론(자이티가) 같은 기존 약물에 내성이 생긴 환자가 새로운 옵션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임상적 의미가 큽니다.

그 외 주요 후보 정리

회사후보 물질표적적응증단계
Arvinas/PfizerARV-471ERER+ 유방암3상
ArvinasARV-110ARmCRPC2상
Kymera/SanofiKT-474IRAK4자가면역2상
C4 TherapeuticsCFT8634BRD9활막육종1/2상
FoghornFHD-609BRD9SMARCB1 결손 종양1상
Bristol-Myers SquibbBMS-986365ARmCRPC3상

자가면역 적응증으로 영역이 확장된 KT-474는 PROTAC이 항암제 너머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화농성 한선염(HS) 같은 만성 염증 질환에서 IRAK4를 분해해 NF-κB 신호를 차단하는 전략입니다.

한국 TPD 생태계: 유빅스·핀테라퓨틱스의 전략

국내에서도 TPD 분야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식약처와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TPD 파이프라인은 30개를 넘어섰고, 일부는 임상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유빅스테라퓨틱스: TPD 플랫폼의 선두주자

유빅스테라퓨틱스는 국내 PROTAC 분야의 대표주자입니다. 자체 개발한 디그라듀서(Degraducer)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표적을 공략하고 있고, 전립선암 대상 AR 분해제 UBX-103을 임상 1상에 진입시켰습니다. 글로벌 빅파마와의 공동 연구 계약도 여러 건 체결한 상태입니다.

핀테라퓨틱스: 분해 가능한 단백질 확장

핀테라퓨틱스는 표적 범위를 항암제 너머 자가면역·신경퇴행 질환까지 확장하는 전략입니다. 자체 TPD 라이브러리를 통해 다양한 적응증을 동시에 탐색하고 있고, AI 기반 분자 설계를 활용해 후보 물질 발굴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산업적 의미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한 연구자는 "TPD는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합성신약 분야에서 의미 있는 글로벌 격차를 만들 수 있는 분야"라고 평가합니다. ADC와 비슷하게 TPD 역시 화학·생물학·구조생물학이 모두 결합된 영역이어서 한국 연구진의 강점이 살아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TPD 신약 개발 시작 가이드

연구실이나 초기 벤처가 TPD 영역에 진입하려 한다면 다음 흐름이 일반적입니다.

1단계: 표적 선택과 검증

기존 저해제로 풀리지 않던 단백질, 또는 저해제 내성이 만들어진 단백질을 우선 후보로 고릅니다. 유전체·전사체 데이터에서 발현량이 높고 질병과 인과관계가 강한 단백질을 찾는 것이 핵심입니다. KRAS, MYC, BCL6 같은 고전적 undruggable 타깃이 자주 거론됩니다.

2단계: POI 리간드 발굴

표적 단백질에 결합하는 작은 분자를 찾습니다. 활성을 막을 필요는 없고, 그저 잡을 수만 있으면 됩니다. DEL(DNA-encoded library) 스크리닝, 단편 기반 스크리닝(fragment-based screening), AI 기반 가상 스크리닝이 자주 활용됩니다.

3단계: E3 리가아제 선택과 링커 최적화

CRBN, VHL이 가장 자주 쓰이지만 최근에는 조직 특이적으로 발현하는 E3 리가아제(예: 간에서 발현하는 DCAF11)를 활용해 부작용을 줄이는 시도가 늘고 있습니다. 링커 길이·유연성·화학적 성질은 3자 복합체 형성 효율을 결정하므로 반복 최적화가 필요합니다.

4단계: 세포·동물 모델 검증

세포 내 표적 단백질 분해 정도를 western blot, 정량 단백질체학으로 확인합니다. DC50(분해 50% 농도), Dmax(최대 분해율)를 핵심 지표로 봅니다. 이후 PK/PD 모델, 종양 이식 동물 모델에서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합니다.

FAQ

PROTAC과 일반 저해제는 무엇이 다른가요?

저해제는 단백질의 활성 부위에 결합해 일시적으로 기능만 막는 occupancy-driven 방식입니다. 약물이 떨어지면 단백질은 다시 활성을 되찾습니다. PROTAC은 표적 단백질을 세포 내 분해 시스템으로 끌고 가 통째로 분해해 버리는 event-driven 방식입니다. 한 분자가 여러 번 재사용되며, 분해된 단백질이 새로 합성될 때까지 효과가 지속됩니다.

PROTAC은 모든 단백질을 분해할 수 있나요?

이론적으로는 표적에 약하게라도 결합할 수 있는 자리만 있으면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표적 단백질과 E3 리가아제 사이의 거리·각도가 유비퀴틴화에 적합해야 하고, 표적이 세포질이나 핵에 위치해야 합니다. 막관통 단백질이나 세포 외 단백질은 PROTAC으로 분해하기 어렵고, LYTAC·AUTOTAC 같은 다른 TPD 모달리티가 그 영역을 보완합니다.

경구 흡수가 어렵다고 들었는데 임상에 적합한가요?

분자량 700~1,200 Da는 분명 도전 과제입니다. 하지만 ARV-471, ARV-110 같은 경구 PROTAC이 이미 임상에서 충분한 노출(exposure)을 확보한 사례가 나왔습니다. 최근에는 양친매성 설계, 흡수 보조제, 인공 막투과 펩타이드 같은 접근으로 경구 흡수율을 높이는 연구가 활발합니다. 정맥 주사·피하 주사 제형도 병행 개발되고 있습니다.

몰레큘러 글루는 PROTAC보다 우월한가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몰레큘러 글루는 분자량이 작아 약물 동태가 유리하지만, 합리적 설계가 어려워 발굴 단계의 우연성이 큽니다. PROTAC은 표적 단백질에 결합하는 리간드만 있으면 비교적 체계적으로 설계가 가능합니다. 실무적으로는 두 모달리티를 적응증과 표적에 맞춰 병행 개발하는 회사가 많습니다.

한국에서 TPD 임상시험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국내 TPD 임상은 주로 종양내과 진행 중인 대학병원(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대병원 등)에서 수행됩니다. 임상시험 정보는 식약처 임상시험정보시스템(MFDS)과 ClinicalTrials.gov에서 검색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PROTAC 임상은 표준 치료에 실패한 진행성 고형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므로, 주치의를 통해 임상시험 코디네이터에게 사전 스크리닝 가능 여부를 문의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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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