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체-약물 접합체(Antibody-Drug Conjugate, ADC)는 암세포 표면 항원을 인식하는 단일클론항체에 강력한 세포독성 약물(페이로드)을 링커로 연결한 유도 미사일 형태의 표적 항암제입니다. HER2 양성 유방암 치료제 엔허투, 삼중음성 유방암 치료제 트로델비가 대표적이며, 2026년 글로벌 ADC 시장 규모는 약 300억 달러로 전망됩니다. 본문에서는 ADC의 작동 원리, 주요 승인 사례, 부작용과 한계, 그리고 차세대 ADC의 방향성을 정밀의학 관점에서 정리합니다.
목차
- HER2 저발현 유방암 환자의 차트가 바뀐 순간
- ADC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가
- 엔허투·트로델비·카드사일라: 글로벌 승인 ADC 현황
- 폐독성·바이스탠더 효과: ADC의 그림자
- 한국 ADC 개발 현황과 글로벌 라이선스 동향
- 차세대 ADC와 정밀 종양학의 다음 10년
- FAQ
- 같이 읽으면 좋은 것들
HER2 저발현 유방암 환자의 차트가 바뀐 순간
2022년 6월 ASCO 학회 발표 영상을 본 저희 종양내과 의국은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DESTINY-Breast04 임상 결과가 공개됐기 때문입니다. 트라스투주맙데룩스테칸(엔허투)이 HER2 저발현(low) 유방암 환자에서 기존 화학항암제 대비 사망 위험을 36% 낮춘다는 결과였습니다.
HER2 저발현은 그동안 표적 치료의 사각지대였습니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약 60%가 이 분류에 속하지만, IHC 점수가 1+ 또는 2+/ISH 음성이라는 이유로 표적치료제 옵션이 거의 없었습니다. 호르몬 치료 실패 이후에는 사실상 세포독성 항암제만 남았고, 5년 생존율은 30%대에 머물렀습니다.
그날 이후 임상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들은 단어는 "다시 한번 IHC를 보자"였습니다. 같은 환자, 같은 종양 조직이라도 HER2 저발현으로 재분류되는 순간 치료 옵션이 한 줄에서 두세 줄로 늘어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것이 ADC가 임상에 가져온 변화의 본질입니다. 표적 항원의 발현 강도가 낮아도, ADC라는 형태로 약물을 정확히 배달할 수 있게 되면서 "표적 가능"의 문턱 자체가 낮아졌습니다.
물론 모든 환자가 반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 병원에서 엔허투를 받은 8명 중 2명은 6개월 이내 진행됐고, 1명은 간질성 폐질환으로 약물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ADC는 만능 무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HER2 저발현이라는 분류 자체에 갇혀 있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어준 것은 분명합니다.
ADC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가
ADC는 세 가지 구성 요소로 이루어진 유도 미사일입니다. 표적을 찾는 항체, 탄두 역할의 세포독성 페이로드, 그리고 둘을 연결하면서 정확한 시점에 분리되는 링커입니다. 대한내과학회지 (2023) 리뷰 논문에 따르면 ADC는 항체 표적에 특이적 결합 후 세포 내 진입(internalization), 링커 절단, 페이로드 방출, 세포사멸 유도라는 4단계로 작동합니다.
1) 단일클론항체 (mAb)
암세포 표면에 과발현된 항원을 표적합니다. HER2, TROP-2, Nectin-4, BCMA, CD30, CD22 등이 임상 적용된 표적입니다. 항체가 정상 세포보다 암세포에 압도적으로 많이 결합해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항원 선택이 ADC 개발의 첫 관문입니다.
2) 페이로드 (cytotoxic payload)
기존 화학항암제로는 인체 투여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세포독성 약물입니다. 미세소관 억제제 계열(MMAE·MMAF·DM1·DM4)과 DNA 손상 유도 토포아이소머라제 I 억제제 계열(데룩스테칸·SN-38)이 양대 산맥입니다. 엔허투의 페이로드인 데룩스테칸은 단독 투여 시 독성이 너무 강해 약물로 쓸 수 없었지만, 항체에 결합돼 표적 세포 안에서만 방출되도록 설계되면서 임상에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3) 링커 (linker)
체내 혈장에서는 끊어지지 않고, 표적 세포 내부의 특정 조건(리소좀의 pH, 카뎁신 B 같은 단백질 분해 효소, 글루타티온 환원 환경)에서 정확히 절단되도록 설계됩니다. 캐싸일라(Kadcyla)는 비절단형 SMCC 링커, 애드세트리스(Adcetris)는 효소 절단형 발린-시트룰린 링커를 사용합니다.
4) DAR (Drug-Antibody Ratio)
항체 한 개에 페이로드가 평균 몇 개 붙어 있는지를 의미합니다. 캐싸일라는 DAR 3.5, 엔허투는 DAR 8입니다. DAR이 높을수록 효능은 강해지지만 약물 동태와 독성 관리가 까다로워집니다. 차세대 ADC 개발의 핵심 변수가 바로 DAR 균일성입니다.
| 구성 요소 | 역할 | 대표 기술 |
|---|---|---|
| 항체 (mAb) | 표적 인식 | HER2·TROP-2·Nectin-4 |
| 링커 (linker) | 안정성과 방출 제어 | 효소 절단형·비절단형·pH 민감형 |
| 페이로드 (payload) | 세포 사멸 유도 | 데룩스테칸·MMAE·DM1·SN-38 |
| DAR | 항체당 약물 수 | 평균 3.5~8 |
엔허투·트로델비·카드사일라: 글로벌 승인 ADC 현황
2024년 말 기준 전 세계에서 FDA 승인을 받은 ADC는 15종을 넘었습니다. 혈액암과 고형암 모두에서 임상 적용이 확대됐고, 2025~2026년에도 폐암·위암·자궁내막암 등으로 적응증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엔허투 (Enhertu, 트라스투주맙데룩스테칸)
다이이찌산쿄와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 개발했습니다. HER2를 표적하는 트라스투주맙에 토포아이소머라제 I 억제제인 데룩스테칸을 DAR 8로 결합했습니다. 2019년 미국 FDA에서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3차 치료제로 처음 승인됐고, 이후 위암·HER2 저발현 유방암·HER2 양성 비소세포폐암으로 적응증이 확대됐습니다. 한국 식약처도 2023년 9월 유방암·위암 3차, 같은 해 12월 유방암 2차 치료에 허가했습니다.
트로델비 (Trodelvy, 사시투주맙고비테칸)
길리어드가 개발한 TROP-2 표적 ADC로, 페이로드는 이리노테칸의 활성 대사물인 SN-38입니다. 삼중음성 유방암(TNBC)에서 처음 승인됐고, 이후 HER2 음성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으로 적응증이 확장됐습니다. ASCENT 임상에서 표준 화학항암제 대비 전체 생존기간을 5.4개월 연장한 결과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카드사일라 (Kadcyla, 트라스투주맙엠탄신)
로슈가 개발한 1세대 ADC입니다. 미세소관 억제제 DM1을 SMCC 비절단 링커로 트라스투주맙에 결합한 형태로, 2013년 FDA 승인을 받았습니다. HER2 양성 유방암 보조요법 표준 치료의 일부로 자리 잡았지만, 엔허투의 DESTINY-Breast03 결과 이후 2차 치료에서는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애드세트리스 (Adcetris, 브렌툭시맙베도틴)
CD30을 표적하는 시애틀 제네틱스(Seagen)의 ADC로, 호지킨 림프종과 역형성대세포림프종에서 표준 치료의 일부로 쓰입니다. 페이로드는 MMAE, 링커는 효소 절단형 발린-시트룰린입니다.
시장 규모와 성장세
글로벌 ADC 시장 규모는 2019년 약 30억 달러에서 2026년 약 300억 달러로 10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국내 기준으로는 종근당 분석 기준 2022년 약 8조 원에서 2026년 약 17조 9천억 원 규모로 연평균 22%씩 성장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폐독성·바이스탠더 효과: ADC의 그림자
ADC를 "유도 미사일"이라고 부르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정상 조직 손상이 적지 않습니다. 항체 표적이 암세포에만 발현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페이로드가 강력하기 때문에 미량이라도 정상 조직에 도달하면 독성이 나타납니다.
간질성 폐질환 (ILD)
엔허투에서 가장 주목받는 부작용입니다. 임상 데이터에 따르면 약 10% 전후의 환자에서 발생하며, 일부에서는 치명적 경과를 보입니다. 데룩스테칸의 세포 투과성이 높아 표적 세포를 죽인 뒤 주변 정상 세포로까지 약물이 확산되는 바이스탠더 효과(bystander effect)가 주요 기전으로 지목됩니다. 미국 FDA·EMA·한국 식약처 모두 ADC 처방 시 호흡기 증상 모니터링을 권고합니다.
호중구 감소증과 골수 억제
트로델비를 비롯해 SN-38 페이로드를 쓰는 ADC에서 흔히 나타납니다. 호중구 감소성 발열로 입원하는 사례가 임상시험에서도 10% 이상 보고됐습니다.
안독성과 각막염
벨란타맙마포도틴(Blenrep) 같은 BCMA 표적 ADC에서 각막 합병증이 보고됐습니다. 페이로드가 안구 표면 상피세포에 우선적으로 영향을 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이스탠더 효과: 양날의 검
페이로드가 표적 세포 밖으로 빠져나오면 항원 발현이 낮은 주변 암세포까지 죽일 수 있어, HER2 저발현 환자에서도 효과를 내는 핵심 기전입니다. 하지만 같은 기전이 정상 조직 손상의 주요 원인이기도 합니다. 차세대 ADC 개발은 이 바이스탠더 효과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를 핵심 과제로 다룹니다.
한국 ADC 개발 현황과 글로벌 라이선스 동향
국내 기업들도 ADC 개발 경쟁에 본격적으로 합류했습니다. 자체 개발과 글로벌 빅파마 기술 이전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고, 2023~2025년 사이 굵직한 라이선스 계약이 잇따랐습니다.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LegoChem Biosciences)
자체 ADC 플랫폼 ConjuALL을 보유한 국내 1세대 ADC 기업입니다. 2023년 12월 얀센과 약 17억 달러 규모의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하며 LCB84(Trop-2 표적 ADC)의 글로벌 권리를 넘겼습니다.
종근당
2023년 10월 글로벌 빅파마 노바티스에 자가면역질환 신약 후보물질을 약 13억 달러에 라이선스 아웃하며 ADC 외 신약 분야에서도 존재감을 키웠고, 자체 ADC 파이프라인도 전임상 단계에서 진행 중입니다.
셀트리온
기존 트라스투주맙(허셉틴) 바이오시밀러 노하우를 기반으로, 자체 ADC 후보물질 개발과 외부 ADC 플랫폼 도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에이비엘바이오·인투셀·앱티스
이중항체 기반 ADC, 새로운 링커 플랫폼, 위치 특이적 결합 기술 등 차별화된 접근으로 기술 이전을 노리는 신생 ADC 기업들입니다. 한국이 글로벌 ADC 가치 사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차세대 ADC와 정밀 종양학의 다음 10년
ADC 1세대는 단일 항원과 단일 페이로드라는 구조적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표적 항원의 발현이 시간이 지나면서 감소하거나, 종양이 페이로드 약물에 내성을 획득하면 임상 효과가 빠르게 떨어지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관찰됐습니다. 또 정상 조직에 도달한 페이로드가 일으키는 누적 독성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였습니다. ADC의 다음 10년은 "더 정확하게, 더 견디기 쉽게"라는 두 방향에서 진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1) 이중 페이로드 ADC
서로 다른 기전의 두 가지 약물을 한 항체에 결합하는 접근입니다. DNA 손상제와 미세소관 억제제를 함께 탑재해 내성 발생을 줄이려는 시도가 진행 중입니다.
2) 이중 항체 ADC (Biparatopic ADC)
같은 항원의 서로 다른 에피토프를 동시에 인식해, 표적 세포로의 내포화 효율을 높이는 형태입니다. Zanidatamab 같은 이중 HER2 항체 기반 ADC가 대표적입니다.
3) 면역항암제와의 병용
PD-1·PD-L1 면역관문억제제와 ADC를 함께 쓰면, ADC가 유도한 면역원성 세포사(immunogenic cell death)를 통해 면역 반응이 증폭됩니다. 엔허투+키트루다, 트로델비+키트루다 병용 임상이 다수 진행 중입니다.
4) 비-내포화 표적과 새로운 페이로드
기존 항원이 아닌 종양 미세환경 표적(VHH·FAP 등)과, 면역계 조절제·STING 작용제 같은 새로운 페이로드 조합이 시험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5) 동반진단과의 결합
ADC는 표적 항원의 발현 여부에 따라 효능이 좌우되므로, IHC·NGS·디지털 병리 기반 동반진단(companion diagnostics)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AI 디지털 병리가 HER2 저발현을 더 안정적으로 분류하면, ADC의 적응증 자체가 다시 확장될 가능성이 큽니다.
FAQ
ADC와 면역항암제는 어떻게 다른가요?
작동 원리 자체가 다릅니다. 면역항암제는 환자의 면역 시스템을 활성화해 암을 공격하게 하는 간접 치료이고, ADC는 항체로 암세포를 직접 표적해 페이로드로 죽이는 직접 치료입니다. 최근에는 두 가지를 병용하는 임상이 늘고 있어, 경쟁이라기보다는 보완적 무기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ADC는 모든 암 환자에게 쓸 수 있나요?
아닙니다. 표적 항원의 발현이 확인된 환자에게만 적용됩니다. 엔허투는 HER2 발현, 트로델비는 TROP-2 발현이 임상 적용의 기준입니다. 따라서 ADC를 고려할 때는 동반진단을 통한 항원 발현 검사가 선행돼야 합니다.
ADC의 부작용은 일반 항암제와 어떻게 다른가요?
세포독성 항암제 공통의 부작용(골수억제·소화기 증상)은 비슷한 수준으로 발생할 수 있지만, ADC 고유의 부작용으로 간질성 폐질환·각막염·말초신경병증 등이 있습니다. 페이로드 종류에 따라 부작용 양상이 달라지므로 처방 전 상세 모니터링 계획이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보험 적용이 되나요?
엔허투는 2024년부터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3차 치료에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고 있으며, 이후 적응증 확대에 따라 추가 급여 협상이 진행 중입니다. 트로델비 등 다른 ADC도 식약처 허가와 별개로 급여 등재 단계에서 협상이 이뤄지고 있어, 환자 본인부담은 시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차세대 ADC는 기존 ADC와 얼마나 다를까요?
핵심 변화는 "정확도"와 "다층 공격"입니다. 이중 페이로드·이중 항체·면역항암제 병용은 단일 표적 단일 약물이라는 1세대 ADC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또한 동반진단과 디지털 병리의 발전으로 환자 선별 정확도가 높아지면서, ADC의 임상 효과 자체가 한 단계 더 끌어올려질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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