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료의 역사는 크게 세 번의 전환점을 가집니다. 수술로 종양을 제거하고, 방사선과 화학항암제로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며, 그리고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세 번째 혁명 — 면역 항암 치료(Immunotherapy)입니다. 면역 항암 치료는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대신, 환자 자신의 면역계가 암을 스스로 인식하고 제거하도록 돕는 방식입니다. 2018년 PD-1 발견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혼조 다스쿠와 제임스 앨리슨의 연구가 이 혁명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 이후 펨브로리주맙(Keytruda), 니볼루맙(Opdivo) 등 면역관문억제제가 속속 임상에 도입되었고, CAR-T 세포 치료가 혈액암 분야에서 '완치'라는 단어를 꺼내게 만들었습니다. 국내에서도 2026년 현재 20개 이상의 암종에 면역관문억제제가 표준치료 또는 급여 치료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면역 항암 치료는 어디까지 왔고, 우리는 이 치료에 대해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목차
- 면역관문억제제를 처음 투여하던 날: 6개월 시한부에서 2년 생존으로
- 왜 우리 몸은 암세포를 제거하지 못하는가
- 면역관문억제제: 면역 브레이크를 해제하다
- CAR-T 세포 치료: 면역 전투병을 직접 설계한다
- 2026년 최신 연구: 병용 요법과 내성 극복
- 면역 항암 치료의 한계와 앞으로의 과제
- FAQ
- 같이 읽으면 좋은 것들
면역관문억제제를 처음 투여하던 날: 6개월 시한부에서 2년 생존으로
2019년, 진료를 보조하던 시절 기억나는 환자가 한 명 있습니다. 4기 비소세포 폐암 진단을 받고 이미 두 차례 항암화학요법이 실패한 60대 남성이었습니다. 주치의는 펨브로리주맙 투여를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반신반의했습니다. 면역치료제라는 게 정말 이 환자에게 효과가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웠습니다.
3개월 뒤 CT를 찍었을 때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폐 내 다발성 종양들이 뚜렷하게 줄어들어 있었습니다. 의료진 모두가 말 없이 영상을 바라봤습니다. 이후 그 환자는 2년 넘게 생존했습니다. 6개월 시한부라는 예측과는 전혀 다른 결과였습니다. 면역 항암 치료는 모든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효과가 있을 때는 기존 치료법이 줄 수 없었던 반응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왜 우리 몸은 암세포를 제거하지 못하는가
우리 면역계는 본래 암세포를 감지하고 제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T세포(T lymphocyte)가 비정상 세포를 인식하고 파괴하는 것이 그 메커니즘입니다. 그렇다면 왜 암은 생기고, 왜 성장하는 걸까요.
암세포는 진화적으로 면역 회피 전략을 발달시킵니다. 그 중 가장 핵심적인 전략이 바로 면역관문(Immune Checkpoint)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정상적으로 면역 반응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정상 조직까지 공격하는 자가면역 반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 몸에는 T세포 활성을 억제하는 '브레이크' 시스템이 있습니다. PD-1, CTLA-4 같은 단백질이 그 역할을 하는데요.
문제는 암세포가 이 브레이크 시스템을 교묘하게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암세포가 PD-L1이라는 단백질을 발현하면, T세포의 PD-1과 결합하여 T세포의 공격 기능을 차단합니다. 면역 세포가 눈앞에 암세포가 있어도 마치 '정상 세포'로 인식하듯 반응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 발견이 바로 2018년 노벨상의 근거가 된 연구입니다.
면역관문억제제: 면역 브레이크를 해제하다
면역관문억제제(Immune Checkpoint Inhibitors, ICI)는 암세포가 걸어 놓은 면역 브레이크를 풀어 T세포가 다시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게 하는 항체 약물입니다.
현재 임상에서 주로 사용되는 면역관문억제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표적 | 대표 약물 | 주요 적응증 |
|---|---|---|
| PD-1 | 펨브로리주맙(Keytruda), 니볼루맙(Opdivo) | 폐암, 흑색종, 위암, 두경부암 등 |
| PD-L1 | 아테졸리주맙(Tecentriq), 더발루맙(Imfinzi) | 방광암, 폐암, 간세포암 |
| CTLA-4 | 이필리무맙(Yervoy) | 흑색종, 폐암(병용) |
| LAG-3 | 렐라틀리맙(Opdualag) | 흑색종(니볼루맙 병용) |
이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펨브로리주맙은 현재 30개 이상의 암종에 적응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2024~2025년 기준, 전체 암 치료에서 면역관문억제제가 표준 치료에 포함된 암종의 수는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특히 비소세포 폐암의 경우, PD-L1 발현율이 50% 이상인 환자에서 펨브로리주맙 단독 치료가 기존 화학항암제보다 전체 생존기간을 유의미하게 연장한다는 사실이 대규모 임상시험(KEYNOTE-024)을 통해 확립됐습니다. 이 결과는 폐암 1차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었습니다.
면역관문억제제의 가장 큰 장점은 효과가 있을 경우 그 반응이 지속적이라는 점입니다. 기존 항암제는 내성이 생기면 효과가 사라지는 반면, 면역관문억제제로 효과를 본 환자 일부에서는 치료 종료 후에도 수년간 종양 억제가 유지되는 '장기 반응'이 보고됩니다. 4기 흑색종 환자에서 이필리무맙을 투여한 초기 임상 데이터에서 일부 환자가 10년 이상 생존하는 결과가 나타나, 면역 항암 치료의 가능성을 세계 의학계에 각인시켰습니다.
CAR-T 세포 치료: 면역 전투병을 직접 설계한다
CAR-T(Chimeric Antigen Receptor T-cell) 세포 치료는 한 단계 더 나아간 방식입니다. 면역관문억제제가 기존 면역세포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방식이라면, CAR-T는 환자 본인의 T세포를 체외에서 유전공학적으로 개조하여 암세포를 더 정확하게 찾아 파괴할 수 있는 '맞춤형 전투병'으로 만드는 기술입니다.
치료 과정은 이렇습니다. 환자 혈액에서 T세포를 채취하고, 실험실에서 암세포 표면 항원을 인식하는 수용체(CAR)를 T세포에 삽입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CAR-T 세포를 대량 증식시킨 후 다시 환자에게 주입합니다. 이 CAR-T 세포들은 체내에서 표적 항원을 가진 암세포를 찾아 직접 공격합니다.
현재 CAR-T 치료는 혈액암(백혈병, 림프종, 다발성 골수종)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입니다. 재발성·불응성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ALL)에서 완전 관해율 70~90%를 기록한 임상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2025년 ASCO 연례 학술대회에서는 대장암 간 전이 환자를 대상으로 한 CEA 표적 CAR-T 치료에서 고용량 투여 그룹의 57%가 재발 없이 생존했다는 결과가 발표되어 고형암에서의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시됐습니다.
CAR-T 치료의 가장 큰 도전 과제는 고형암에서의 효과 제한입니다. 혈액암과 달리 고형암은 종양 내부로 T세포가 물리적으로 침투하기 어렵고, 종양 미세환경이 면역 억제 상태를 형성하여 주입된 CAR-T 세포가 기능을 잃게 만듭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갑옷형 CAR-T(Armored CAR-T)'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이는 CAR-T 세포에 면역 활성화 사이토카인을 분비하는 기능을 추가하거나, 면역관문억제 신호를 스스로 차단하는 내성 기전을 삽입한 형태입니다. 대사 재프로그래밍을 통해 CAR-T 세포의 지속 능력을 높이는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2026년 최신 연구: 병용 요법과 내성 극복
면역 항암 치료 분야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병용 요법과 내성 극복입니다.
단일 면역관문억제제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가 많고, 초기에 반응했다가도 내성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조합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항암 바이러스 + 면역관문억제제 삼중 병용
항암 바이러스와 두 가지 면역관문억제제(항-PD1·항-CTLA4)를 병용한 연구에서 실험군의 40%에서 종양이 완전히 소실된 결과가 보고됐습니다. 항암 바이러스가 종양 내 면역 환경을 변화시켜 면역관문억제제의 효과를 높이는 시너지 효과로 분석됩니다.
HIF(저산소증 유도 인자) 표적 병용
고형암의 경우 종양 내부가 산소가 부족한 저산소 환경을 형성하는데, 이 환경이 면역 세포의 접근을 막고 암세포의 생존을 돕습니다. 저산소증 유도 인자(HIF-1·HIF-2)를 동시에 억제하는 신규 후보물질이 기존 면역관문억제제와 병용했을 때 내성을 극복하며 50% 이상의 완전 관해율을 기록했다는 연구가 최근 발표됐습니다.
CAR-T + 면역관문억제제 병용
CAR-T 세포도 종양 미세환경에서 PD-L1에 의해 기능이 억제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CAR-T 치료와 면역관문억제제를 병용하는 연구들이 진행 중이며, 전임상 및 초기 임상에서 고형암에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면역 항암 치료의 한계와 앞으로의 과제
면역 항암 치료가 혁신적이지만, 모든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만능 치료법은 아닙니다. 현재의 면역 항암 치료는 선별된 환자에서 강력한 효과를 내지만, 여전히 많은 환자가 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간극을 좁히는 것이 지금 이 분야의 핵심 과제입니다.
- 반응률의 한계: 면역관문억제제가 효과를 내는 환자는 암종에 따라 20~40% 수준입니다. 나머지 환자는 반응하지 않거나 초기 반응 후 내성이 발생합니다.
- 면역 관련 이상 반응(irAE): 면역계가 과활성화되면 폐, 간, 장, 피부, 내분비계 등 다양한 장기에 자가면역 반응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면역관문억제제 사용 환자의 30~60%에서 어느 정도의 면역 관련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 CAR-T의 고형암 한계: CAR-T는 혈액암에서 뛰어난 효과를 보이지만, 고형암은 종양 미세환경의 복잡성과 T세포 침투의 어려움으로 인해 효과가 제한됩니다.
- 비용 문제: CAR-T 치료는 치료당 수억 원에 달하는 비용이 문제입니다. 국내에서도 일부 CAR-T 치료제가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받았지만, 적응증이 제한적입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바이오마커 개발입니다. 누가 면역 항암 치료에 반응할지를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불필요한 치료를 줄이고 적합한 환자에게 빠르게 치료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PD-L1 발현률, 종양 돌연변이 부담(TMB), 마이크로새텔라이트 불안정성(MSI) 등이 현재 사용되는 바이오마커이지만, 예측 정확도를 높이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국내 면역 항암 치료 접근성도 빠르게 개선되고 있습니다. 2023~2025년 사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여러 면역관문억제제에 대해 급여 기준을 확대했습니다. 현재 비소세포 폐암, 위암, 두경부암, 간세포암, 식도암, 자궁경부암 등 다양한 암종에서 조건을 충족하는 환자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아 면역관문억제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전히 일부 적응증과 병용 요법에 대해서는 급여가 제한적이거나 비급여로 처방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비용 부담 문제는 남아있는 숙제입니다.
FAQ
면역 항암 치료는 모든 암에 효과가 있나요?
현재 면역관문억제제가 승인된 암종은 흑색종, 비소세포 폐암, 위암, 두경부암, 방광암, 간세포암, 신세포암, 대장암(MSI-H), 림프종 등 다양합니다. 그러나 모든 환자에서 효과가 있는것은 아닙니다. 암종에 따라 반응률이 다르고, PD-L1 발현 수준·TMB·MSI 등의 바이오마커에 따라 반응 가능성이 달라집니다. 담당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자신에게 면역 항암 치료가 적합한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면역 항암 치료의 부작용은 어떤 것이 있나요?
면역관문억제제의 부작용은 일반 항암제와 다릅니다. 면역계 과활성화로 인한 '면역 관련 이상 반응(irAE)'이 주된 부작용입니다. 피부 발진, 설사·대장염, 간 기능 이상, 폐렴, 갑상선 기능 저하·항진 등 다양한 장기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은 조기에 발견하면 스테로이드 등으로 관리할 수 있지만, 중증 irAE가 발생하면 치료를 중단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치료 중 새로운 증상이 생기면 즉시 의료진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CAR-T 치료는 어떤 암에 적용할 수 있나요? 국내에서도 받을 수 있나요?
국내에서는 재발성·불응성 B세포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미만성 대세포 B세포 림프종, 다발성 골수종 등에 CAR-T 치료제가 허가되어 있습니다. 일부는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며, 서울대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에서 시행 중입니다. 고형암에 대한 CAR-T는 현재 임상시험 단계이며, 아직 일반 임상에서 표준치료로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기존 항암 화학요법과 면역 항암 치료는 병용할 수 있나요?
네, 병용이 가능하며 실제로 여러 암종에서 병용 요법이 표준치료로 자리잡았습니다. 예를 들어 비소세포 폐암에서 펨브로리주맙과 화학항암제의 병용은 단독 화학요법보다 전체 생존율이 유의미하게 높다는 것이 입증되어 있습니다. 병용 방식은 항암제의 종류, 암의 병기, 환자 상태에 따라 달라지므로 종양내과 전문의와 충분히 상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