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관류 보존(기계관류)이란 무엇인가요?
핵심은 장기를 얼려 멈추는 대신 계속 살려두는 방식으로 옮겨가는 전환입니다. 지금까지 이식 장기는 4도 보존액에 담아 아이스박스로 옮겼습니다. 기계관류는 체외 장치로 산소와 영양이 든 관류액을 장기에 계속 흘려보내 기능을 유지하고, 이식 전에 그 장기가 쓸만한지 직접 평가합니다. 미국 다기관 데이터에서 순환정지 후 기증(DCD) 간을 체온기계관류(NMP)로 보존한 경우 1년 이식편 생존율이 94%로 뇌사 기증(DBD) 93%와 같은 수준이었고 기존 정적 저온 보존 86%를 앞섰습니다. 한국은 2025년 뇌사 장기기증자가 370명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DCD 도입을 준비하고 있어 이 기술의 의미가 특히 큽니다.
목차
- 장기 관류 보존(기계관류)이란 무엇인가요?
- 아이스박스와 시계, 6시간이라는 제약
- 정적 저온 보존은 무엇을 놓치고 있었나
- 기계관류의 세 갈래: HOPE·NMP·NRP
- 임상 성적, 숫자로 확인된 것
- 한국의 조건: 기증자 370명과 DCD 도입
- 관류 중 무엇을 보고 이식 여부를 정하나
- 남은 과제와 한계
- FAQ
- 참조논문
- 같이 읽으면 좋은 것들
아이스박스와 시계, 6시간이라는 제약
이식외과 팀의 장기 회수 과정을 참관한 적이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물건은 수술 장비가 아니라 아이스박스와 스톱워치였습니다. 장기를 꺼내 보존액으로 씻고 얼음에 담는 순간부터 시계가 돌아갑니다. 간은 대체로 8~12시간, 심장과 폐는 4~6시간 안에 이식이 끝나야 합니다.
그 시간 동안 팀이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장기는 얼음 속에서 대사가 거의 멈춘 상태로 있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들여다볼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식 후 간이 제대로 기능할지, 담도에 손상이 남았는지는 혈류를 다시 연결한 뒤에야 드러납니다. 참관 당시 집도의가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봉지에 든 장기는 우리한테 아무 말도 안 해요."
이 침묵이 기증 장기를 버리게 만드는 주된 이유였습니다. 고령 기증자나 지방간이 있는 간, 심장이 멈춘 뒤 기증된 장기는 위험을 감수하기 어려워 이식에 쓰이지 않고 폐기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기계관류는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합니다. 장기를 체외에서 다시 뛰게 만들어 담즙 생산량이나 젖산 수치 같은 지표를 실시간으로 보는 것, 즉 장기에게 말을 시키는 기술입니다.
정적 저온 보존은 무엇을 놓치고 있었나
한 줄로 요약하면 저온은 손상을 늦추지만 없애지는 못합니다.
정적 저온 보존(static cold storage, SCS)은 장기를 4도 안팎으로 낮춰 대사율을 떨어뜨리는 방식입니다. 단순하고 저렴하며 수십 년간 표준이었습니다. 다만 두 가지 손상이 누적됩니다. 첫째는 허혈 손상으로, 산소 공급이 끊긴 상태에서 세포 내 에너지원이 소진되고 대사 산물이 쌓입니다. 둘째는 재관류 손상으로, 혈류를 다시 연결하는 순간 염증 반응과 활성산소가 폭발적으로 발생합니다.
DCD 장기가 특히 불리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심장이 멈춘 뒤 혈류가 끊긴 시간(온허혈 시간)이 추가되기 때문입니다. DCD 간은 역사적으로 뇌사 기증 간보다 성적이 나빴고 그 주된 원인은 허혈성 담도 손상이었습니다. 담도 협착이 생기면 재이식까지 필요해집니다.
기계관류의 세 갈래: HOPE·NMP·NRP
기계관류는 온도와 시점에 따라 갈립니다.
| 방식 | 온도 | 시점 | 주된 목적 |
|---|---|---|---|
| HOPE (저온산소기계관류) | 4~12도 | 장기 회수 후 체외 | 에너지 회복, 재관류 손상 완화 |
| NMP (체온기계관류) | 35~37도 | 장기 회수 후 체외 | 기능 유지 + 이식 전 기능 평가 |
| NRP (체온국소관류) | 체온 | 기증자 몸 안에서 | DCD 온허혈 손상 조기 차단 |
HOPE는 차갑게 유지하되 산소를 공급해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상태를 회복시킵니다. 장치가 비교적 단순하고 기존 워크플로에 얹기 쉬운 편입니다.
NMP는 장기를 사실상 체내와 비슷한 환경에 둡니다. 간이라면 담즙을 만들고 젖산을 대사합니다. 이 대사 지표를 이식 전에 측정할 수 있다는 점이 결정적입니다. 기존에는 겉모습과 기증자 정보로 추정할 수밖에 없었던 장기 상태를 기능으로 판정하게 됩니다. 쓸 수 없다고 판단해 버렸을 장기를 살리고, 반대로 겉보기에 괜찮아 보여도 기능이 나쁜 장기를 걸러냅니다.
NRP는 접근이 조금 다릅니다. 장기를 꺼내기 전에 기증자의 흉복부 혈관에 체외순환 장치를 연결해 산소화된 혈액을 다시 돌립니다. 온허혈 손상이 진행되는 구간 자체를 짧게 만드는 전략입니다. 스페인 연구진은 흉복부 NRP로 회수한 간의 성적을 뇌사 기증 간과 비교한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여러 장기를 동시에 다룰 때
한 기증자에게서 심장과 간을 함께 회수하는 경우에는 두 장기의 최적 조건이 충돌합니다. 최근 심장과 간을 각각 NMP로 관류해 동시 이식에 성공한 증례가 보고됐습니다. 다장기 이식에서 DCD 기증자가 잘 활용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가 이 충돌이었는데 기계관류가 조정 장치 역할을 하는 셈이죠.
임상 성적, 숫자로 확인된 것
미국 전국 데이터 분석과 다기관 등록사업 결과가 2026년 들어 잇달아 나왔습니다.
| 지표 | DCD + NMP | DCD + 정적 저온 보존 | DBD (뇌사 기증) |
|---|---|---|---|
| 1년 이식편 생존율 | 94% | 86% | 93% |
| 1년 환자 생존율 | 98% | 93% | 94~95% |
| 조기 이식편 기능부전 | 21.7% | 50.2% | 21.1~26.4% |
가장 눈에 띄는 칸은 조기 이식편 기능부전(EAD)입니다. DCD 간을 얼음으로 보존했을 때 50.2%였던 수치가 NMP를 쓰면 21.7%로 내려가 뇌사 기증 장기와 같은 구간에 들어옵니다. 이식 직후 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비율이 절반에서 5분의 1로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전국 장기관류 등록사업(National Organ Perfusion Registry)의 다기관 데이터에서는 90일 사망보정 이식편 실패율이 1.7%였고 DCD와 DBD 사이에 차이가 없었습니다. 연구진은 이 결과를 근거로 NMP를 표준 진료로 통합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개별 센터의 경험이 아니라 전국 단위 비교에서 나온 결론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정리하면 기계관류의 성과는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성적 개선이고 다른 하나는 이식 가능 장기의 확대입니다. 후자가 장기 부족 문제에 직접 닿습니다.
한국의 조건: 기증자 370명과 DCD 도입
국내 상황은 이 기술의 필요성을 더 선명하게 만듭니다.
2025년 뇌사 장기기증자는 370명으로 전년 397명보다 6.8% 줄었습니다. 2016년 573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내려오는 흐름입니다. 반면 대기자는 늘었습니다. 2024년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한 사람은 3,096명, 하루 평균 8.48명입니다. 2024년 12월 기준 평균 대기기간은 4년에 달했습니다.
해외에서는 생존 기증을 제외한 전체 장기기증자 중 절반을 DCD가 차지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뇌사자 기증에만 의존하고 있어 수급 구조 자체가 좁습니다. 정부는 첫 장기기증 종합계획을 통해 뇌사 외에 연명의료 중단자의 순환정지 후 기증을 새로 도입할 방침을 밝혔습니다.
다만 법제화는 여러 번 좌초했습니다. 2023년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2024년 5월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고 22대 국회에서 같은 취지로 재발의된 뒤 논의가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사회적 합의 부족이 반복된 이유로 꼽힙니다.
왜 DCD 도입과 기계관류가 같이 논의되어야 할까요
DCD를 허용해도 장기 성적이 나쁘면 제도의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앞서 본 숫자가 이 대목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DCD 간을 얼음으로 보존하면 1년 이식편 생존율이 86%인데 NMP를 쓰면 94%로 뇌사 기증과 같아집니다. 즉 기계관류 인프라가 준비된 상태에서 DCD를 도입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도입하는 것은 결과가 다릅니다.
인프라에는 장비만 포함되지 않습니다. 관류액 수급, 관류 중 장기 평가 기준, 24시간 대응 인력, 비용 산정 체계가 함께 필요합니다. 이 준비가 법 개정 논의와 같은 속도로 진행돼야 합니다.
관류 중 무엇을 보고 이식 여부를 정하나
기계관류의 실질적인 가치는 보존 시간 연장보다 판정에 있습니다. 체온기계관류 중에 장기는 실제로 일을 하기 때문에 그 결과물을 측정할수 있습니다.
간을 예로 들면 관류 시작 후 몇 시간 동안 확인하는 항목이 대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 젖산 제거: 관류액의 젖산 농도가 일정 시간 안에 떨어지는지 봅니다. 대사가 작동한다는 가장 직접적인 신호입니다
- 담즙 생산: 담즙이 나오는지, 그 담즙의 pH와 중탄산 농도가 어떤지 확인합니다. 담도 상피의 상태를 반영합니다
- 관류 저항과 혈류: 간동맥과 간문맥의 압력·유량이 안정적인지 봅니다
- 포도당·산염기 균형: 관류액 조성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개입이 필요한지가 기능 예비력을 보여줍니다
이 지표들이 기준을 넘으면 이식하고 넘지 못하면 쓰지 않습니다. 기존 방식에서는 기증자 나이, 지방간 정도, 온허혈 시간 같은 대리 지표로 위험을 추정했습니다. 추정이 보수적일수록 멀쩡한 장기도 버려집니다. 기능 판정으로 옮겨가면 이 손실이 줄어듭니다.
역방향도 중요합니다. 기증자 조건만 보면 문제없어 보이는 장기가 관류 중 젖산을 제거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이식을 중단하는 결정은 수혜자에게 재이식 위험을 넘기지 않는 선택이 됩니다. 기계관류가 성적을 올리는 경로에는 좋은 장기를 살리는 것과 나쁜 장기를 걸러내는 것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남은 과제와 한계
기계관류는 만능이 아닙니다. 짚어둘만한 한계가 몇 가지 있습니다.
- 비용: 장치와 일회용 소모품, 관류액 비용이 정적 저온 보존보다 훨씬 큽니다. 보험 수가 체계가 뒤따르지 않으면 센터가 부담을 지게 됩니다
- 인력과 숙련도: 관류 중 지표를 해석해 이식 여부를 판단하는 일은 경험 의존적입니다. 초기 도입 센터의 성적 변동이 보고됩니다
- 평가 기준의 미확립: 담즙 pH, 젖산 제거율 등 어떤 지표를 어느 값에서 자를지에 관한 합의가 완전하지 않습니다
- 장기별 차이: 간에서 근거가 가장 많이 쌓였고 심장·폐·신장은 자료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또 하나 짚을 대목은 윤리입니다. NRP처럼 기증자 몸 안에서 순환을 재개하는 방식은 죽음의 판정과 순환 재개의 관계를 두고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관류 범위를 흉복부로 한정하고 뇌혈류를 차단하는 절차가 표준으로 정리돼 있지만 사회적 설명은 별도로 필요합니다. 기술 도입과 합의 형성이 함께 가야 하는 영역입니다.
FAQ
기계관류는 기존 아이스박스 보존과 무엇이 다른가요?
정적 저온 보존은 장기를 4도 보존액에 담아 대사를 늦추는 방식으로, 이식 전에 장기 상태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기계관류는 체외 장치로 산소와 영양이 든 관류액을 계속 흘려보내 기능을 유지하고 담즙 생산량이나 젖산 수치 같은 지표를 실시간으로 측정합니다. 보존 시간을 늘리는 동시에 이식 적합성을 기능으로 판정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NMP를 쓰면 성적이 실제로 좋아지나요?
미국 전국 데이터에서 DCD 간에 NMP를 적용한 경우 1년 이식편 생존율 94%, 1년 환자 생존율 98%로 뇌사 기증 장기와 같은 수준이었습니다. 정적 저온 보존을 쓴 DCD 간은 각각 86%, 93%였습니다. 조기 이식편 기능부전은 50.2%에서 21.7%로 낮아졌습니다. 다기관 등록사업에서도 90일 이식편 실패율이 1.7%로 DCD와 뇌사 기증 사이에 차이가 없었습니다.DCD가 도입되면 장기 부족이 해결될까요?
완전한 해결은 아니지만 공급 구조가 넓어집니다. 해외에서는 생존 기증을 제외한 기증자의 절반이 DCD인 경우도 있습니다. 국내 뇌사 기증자는 2025년 370명으로 감소 추세이고 하루 평균 8.48명이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상황입니다. 다만 DCD 장기는 온허혈 손상이 더해지므로 기계관류 인프라가 함께 준비돼야 성적이 담보됩니다.한국에서 기계관류를 이미 쓰고 있나요?
국내에서도 일부 이식 센터가 기계관류 장비를 도입해 경험을 축젹하고 있습니다. 다만 DCD가 제도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적용 대상이 제한적입니다. 장비 도입과 함께 관류액 수급, 장기 평가 기준, 24시간 대응 인력, 비용 산정 체계가 갖춰져야 실제 진료에 안정적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기계관류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요?
비용과 평가 기준입니다. 장치와 일회용 소모품, 관류액 비용이 정적 저온 보존보다 훨씬 크고 보험 수가가 뒤따르지 않으면 센터가 부담을 지게 됩니다. 또 담즙 pH나 젖산 제거율 같은 지표를 어느 값에서 이식 가능으로 판정할지에 대한 국제적 합의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참조논문
- Normothermic Machine and Regional Perfusion in US DCD Liver Transplantation: A National Comparative Analysis Supporting Adoption as Standard of Care
- Real-World Use of Normothermic Machine Perfusion in Liver Transplantation: A Multi-Institutional Experience From the National Organ Perfusion Registry
- Overall Outcomes of Liver Transplantation Using Upfront Normothermic Machine Perfusion: A Real-World Single-Center Experience
같이 읽으면 좋은 것들
출처
- Normothermic Machine and Regional Perfusion in US DCD Liver Transplantation: A National Comparative Analysis Supporting Adoption as Standard of Care (2026)(ScholarlyArticle)
- Real-World Use of Normothermic Machine Perfusion in Liver Transplantation: A Multi-Institutional Experience From the National Organ Perfusion Registry (2026)(ScholarlyArticle)
- Overall Outcomes of Liver Transplantation Using Upfront Normothermic Machine Perfusion: A Real-World Single-Center Experience (2026)(ScholarlyArticle)
- 뇌사 외 '심정지 사망'도 장기기증 가능… 첫 국가 종합계획 마련 (정책브리핑)(GovernmentService)
- 장기수급불균형 해법으로 '순환정지 후 기증(DCD)' 도입 제시 (병원신문)(NewsArticle)
- 국내 장기기증 현황과 기증감소의 해결방안 (Korean Journal of Transplantation)(Scholarly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