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 수술 로봇은 정말 사람 없이 수술을 할 수 있나요?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은 "특정 수술의 특정 단계"까지입니다. 2025년 7월 존스홉킨스 연구팀이 사이언스 로보틱스(Science Robotics)에 발표한 SRT-H는 돼지 담낭 8건을 대상으로 17단계 담낭절제술을 사람 손 개입 없이 수행해 성공률 100%를 기록했습니다. 다만 이건 실제 환자가 아닌 전임상 단계이고, 시중에 팔리는 수술 로봇은 여전히 자율성 레벨 0~1에 머물러 있습니다. 지금 병원에서 쓰는 다빈치는 자율 로봇이 아니라 사람 손의 연장이라고 이해하시면 정확합니다.
목차
- 수술방에서 로봇을 처음 봤을 때 느낀 이상한 점
- 자율성 레벨 0에서 5까지, 지금 우리는 어디 있나
- SRT-H는 무엇을 했고 무엇을 못 했나
- 수술 로봇 시장과 한국의 현재 좌표
- 남은 한계와 환자가 확인해야 할 4가지
- FAQ
- 같이 읽으면 좋은 것들
수술방에서 로봇을 처음 봤을 때 느낀 이상한 점
몇 해 전 대학병원 참관에서 다빈치 전립선절제술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로봇 팔의 움직임이 아니라, 콘솔 앞에 앉은 집도의의 자세였습니다. 이마를 뷰어에 파묻고 두 손으로 마스터 컨트롤러를 쥔 채, 발로는 페달을 계속 밟았다 뗐다 하더군요. 로봇은 3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스스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수술 후 그 교수님이 하신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이건 로봇 수술이 아니라 로봇을 쓰는 사람 수술이에요. 손 떨림을 없애주고 손목이 꺾이는 각도를 늘려줄 뿐이지, 어디를 자를지는 100% 내가 정합니다." 실제로 다빈치의 핵심 기술은 자율 판단이 아니라 진동 필터링과 EndoWrist 관절 자유도입니다.
그러니까 대중이 "로봇 수술"이라는 말에서 떠올리는 이미지와 실제 임상 현장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는 셈입니다. 이 간극을 정확히재는 도구가 바로 자율성 레벨 체계입니다.
자율성 레벨 0에서 5까지, 지금 우리는 어디 있나
수술 로봇의 자율성은 6단계로 나뉩니다. 2017년 양광중(Guang-Zhong Yang) 교수 연구진이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제안한 프레임워크로, 이후 의료 로봇 규제 논의의 사실상 표준이 됐습니다.
| 레벨 | 명칭 | 로봇이 하는 일 | 대표 사례 |
|---|---|---|---|
| 0 | 자율성 없음 | 사람 조작을 그대로 전달 | 다빈치 Xi, 레보아이 |
| 1 | 로봇 보조 | 떨림 제거·경로 제한 등 보조 | 마코(Mako), 로사(ROSA) |
| 2 | 작업 자율 | 개별 술기 하나를 스스로 수행 | STAR 봉합 |
| 3 | 조건부 자율 | 전략을 제안하고 사람이 승인 | 연구 단계 |
| 4 | 고도 자율 | 감독 하에 스스로 결정·집행 | SRT-H(전임상) |
| 5 | 완전 자율 | 사람 개입 없이 수술 전체 수행 | 존재하지 않음 |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2024년 npj 디지털 메디슨(npj Digital Medicine)에 실린 체계적 문헌고찰에 따르면, FDA 승인을 받은 수술 로봇은 사실상 전부 레벨 0~1 구간에 몰려 있습니다. 레벨 2 이상으로 인체에 승인된 시스템은 아직 없습니다.
레벨 1과 레벨 2 사이의 벽
정형외과·신경외과 로봇이 레벨 1에 있는 이유는 뼈가 변형되지 않는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CT로 미리 뜬 3D 지도가 수술 중에도 그대로 유효하니, 로봇이 "여기서 벗어나면 안 됨" 하는 경계를 지킬 수 있습니다.
반대로 복강 안의 연부조직은 숨쉴 때마다 움직이고, 당기면 늘어나고, 피가 나면 색이 바뀝니다. 사전 계획이 5초만에 무의미해지죠. 연부조직 자율 수술이 20년 넘게 벽에 부딪혀 온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SRT-H는 무엇을 했고 무엇을 못 했나
SRT-H는 Hierarchical Surgical Robot Transformer의 약자입니다. 2025년 7월 9일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게재됐고, 하드웨어는 놀랍게도 새로 만든 게 아니라 기존 다빈치 리서치 키트를 그대로 썼습니다. 바뀐 건 소프트웨어뿐입니다.
언어로 조건화된 모방학습
연구진은 존스홉킨스 외과의들이 돼지 사체에서 담낭절제술을 하는 영상을 대량으로 학습시켰습니다. 여기에 "담낭 목 부분을 잡아라", "담낭관에 클립을 물려라" 같은 자연어 캡션을 붙였습니다. ChatGPT를 떠받치는 트랜스포머 구조를 그대로 가져온 겁니다.
구조는 두 층입니다. 상위 정책이 "지금은 클리핑 단계다"라고 판단해 언어 명령을 내리면, 하위 정책이 그 명령을 실제 관절 움직임으로 번역합니다. 담낭절제술 전체를 파지·클리핑·절단 등 17개 하위 작업의 연쇄로 쪼갠 것이 핵심 설계였습니다.
성적표와 그 이면
처음 보는 돼지 담낭 8건 전부에서 사람 손 개입 없이 절차를 완료했습니다. 성공률 100%. 여기까지가 헤드라인입니다.
하지만 논문을 뜯어보면 조건이 붙습니다. 첫째, 사람 집도의보다 확실히 느렸습니다. 둘째, 사체 조직이라 출혈이 거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셋째, 담낭절제술은 복강경 수술 중에서도 해부학적 변이가 적은 축에 속합니다. 넷째, 로봇이 스스로 실수를 알아채고 교정한 사례가 여러 번 관찰됐는데, 이건 강점인 동시에 "실수를 한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합니다.
하필 담낭절제술이었던 이유
왜 담낭이었을까요. 연구진이 담낭절제술을 고른 데는 계산이 있었습니다. 우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시행되는 복강경 수술 중 하나라 학습용 영상이 풍부합니다. 절차가 표준화돼 있어 집도의마다 순서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도 컸고요.
무엇보다 담낭절제술에는 칼로 삼각(Calot's triangle)이라는 명확한 해부학적 랜드마크가 있습니다. 담낭관과 담낭동맥이 만나는 이 구역을 정확히 식별하는 것이 수술의 안전성을 좌우하는데, 뒤집어 말하면 AI에게 "여기를 찾아라"라고 가르칠 목표가 뚜렷하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췌장이나 간 절제처럼 경계가 흐릿하고 출혈 위험이 큰 수술은 아직 근처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실제 임상에서 담낭절제술의 가장 무서운 합병증이 담관 손상인데, 발생률은 0.3~0.7% 수준입니다. 숫자만 보면 낮아 보이지만 한 번 발생하면 재수술과 장기 후유증으로 이어집니다. 자율 로봇이 이 영역에 들어오려면 사람 수준이 아니라 사람보다 나은 안전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STAR에서 SRT-H로: 무엇이 달라졌나
같은 존스홉킨스에서 나온 STAR(Smart Tissue Autonomous Robot)는 2016년 돼지 장문합 자율 봉합에 성공하며 이미 화제가 됐던 시스템입니다. 2022년에는 살아있는 돼지에서 복강경 장문합을 해냈고요.
| 항목 | STAR (2016~2022) | SRT-H (2025) |
|---|---|---|
| 대상 술기 | 장문합 봉합 1개 작업 | 담낭절제술 17단계 전체 |
| 조직 인식 | 형광 마커를 조직에 부착 | 마커 없이 내시경 영상만 |
| 계획 방식 | 사전 프로그래밍된 경로 | 실시간 상황 판단 |
| 자율성 레벨 | 2 (작업 자율) | 4 (고도 자율, 감독 하) |
가장 큰 도약은 형광 마커를 떼어냈다는 점입니다. 사람 환자에게 수술 전 형광 표지를 일일이 심을 수는 없으니까요. 마커 없이 일반 내시경 화면만으로 담관과 동맥을 구분해냈다는 게 임상 적용 가능성 측면에서는 성공률 100%보다 더 의미 있는 진전입니다.
수술 로봇 시장과 한국의 현재 좌표
연구실 성과와 별개로, 상용 시장은 여전히 레벨 0의 세계입니다. 2026년 기준 글로벌 수술 로봇 시장은 약 84억 달러 규모이고 연평균 15% 안팎으로 성장 중인데, 인튜이티브 서지컬이 약 71%를 쥐고 있습나다.
주목할 건 2026년형 다빈치 5입니다. 조직에 가해지는 힘을 수치로 보여주는 포스 피드백, 수술 영상 리플레이 같은 기능이 들어갔지만, 모든 동작은 여전히 집도의가 만듭니다. AI는 실시간 집도가 아니라 분석·복기 층에만 들어가 있습니다. 메드트로닉 휴고(Hugo)가 2025년 12월 FDA 비뇨기 적응증 승인을 받으며 20년 독점 구도에 균열을 냈지만, 자율성 레벨 측면에서는 다빈치와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다빈치는 2005년 국내 도입 이후 누적 50만 건을 넘겼고, 연간 수술 건수는 8만 건대에 올라섰습니다. 2023년 기준 국내 도입 대수는 165대, 상급종합병원 보급률은 98%에 이릅니다. 국산 복강경 수술로봇 레보아이(Revo-i)는 다빈치의 절반 수준 가격을 무기로 자리를 넓히는 중이고요.
정리하면 한국은 로봇 보조 수술 보급률로는 세계 최상위권인데, 이 인프라가 그대로 자율 수술의 하드웨어 기반이 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SRT-H가 기존 다빈치 하드웨어에서 돌아갔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려 보면 말이죠.
하드웨어 경쟁에서 데이터 경쟁으로
수술 로봇 업계의 경쟁 축이 옮겨가고 있다는 신호도 읽힙니다. 지난 20년은 팔이 몇 개인지, 관절이 몇 도까지 꺾이는지를 겨루는 하드웨어 싸움이었습니다. 그런데 SRT-H가 남의 회사 하드웨어 위에서 자율 수술을 해내면서, 진짜 자산은 라벨링된 수술 영상 데이터라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인튜이티브가 누적 50만 건 이상의 국내 수술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쌓아온 방대한 술기 영상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반대로 후발 주자 입장에서는 하드웨어 격차보다 데이터 격차를 좁히는 일이 더 어려운 과제가 됐습니다.
여기서 한국 병원들의 위치가 미묘해집니다. 술기 수준과 수술 건수는 세계적인데,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영상 데이터의 소유권과 활용 근거는 명확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개인정보 비식별 처리, 환자 동의 범위, 병원과 제조사 사이의 데이터 계약 같은 문제가 앞으로 몇 년 안에 본격적으로 불거질 겁니다.
남은 한계와 환자가 확인해야 할 4가지
기술보다 제도가 더 큰 벽
지금 자율 수술의 병목은 알고리즘이 아닙니다. 첫째는 책임 소재입니다. 레벨 4 로봇이 담관을 잘못 잘랐을 때 책임지는 주체가 집도의인지, 병원인지, 제조사인지 정한 나라가 없습니다. 둘째는 검증 체계입니다. 약은 무작위 대조시험으로 검증하지만, 수술 로봇은 술기 학습곡선 때문에 같은 방식이 통하지 않아 IDEAL 프레임워크 같은 별도 평가틀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셋째는 데이터 편향입니다. 특정 병원 몇 명의 집도 영상으로 학습한 모델이 다른 체형·해부 변이 환자에게 그대로 통할지는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로봇 수술을 앞둔 환자를 위한 4단계 확인
1단계, 지금 권유받은 수술이 어느 레벨인지 물어보세요. 2026년 현재 국내 임상에서 쓰이는 건 전부 레벨 0~1입니다. "AI가 수술한다"는 설명을 들었다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되물으셔야 합니다.
2단계, 집도의의 해당 술기 로봇 수술 누적 건수를 확인합니다. 학습곡선이 존재하는영역이라 술자 경험이 결과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3단계, 비용을 미리계산합니다. 로봇수술은 대부분 비급여여서 개복·복강경 대비 수백만 원 차이가 납니다. 실손 가입 여부와 약관을 함께 보세요.
4단계, 개복·복강경과 비교했을 때 내 병기와 위치에서 로봇이 유리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들으세요. 좁고 깊은 골반강 수술처럼 로봇의 이점이 뚜렷한 영역이 있고, 그렇지 않은 영역도 있습니다.
FAQ
자율 수술 로봇으로 사람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시점은 언제인가요?
2026년 현재 레벨 2 이상으로 인체 승인을 받은 시스템은 전 세계에 없습니다. SRT-H도 돼지 사체 전임상 단계입니다. 전문가들은 특정 술기의 특정 단계만 자율화하는 부분 자율이 먼저 올 것으로 봅니다. 예를 들어 봉합이나 절단 같은 반복 작업만 로봇이 맡고 판단은 사람이 하는 방식입니다. 수술 전체 자율화는 기술보다 규제·책임 문제 때문에 훨씬 더 걸립니다.다빈치 로봇 수술도 AI가 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다빈치는 자율성 레벨 0으로, 집도의의 손 움직임을 축소·안정화해 전달하는 마스터-슬레이브 장비입니다. 다빈치 5에 들어간 AI 기능은 수술 후 영상 분석과 술기 복기 용도이지 실시간 집도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절개 위치와 절단 범위는 전적으로 사람이 정합니다.자율 로봇이 사람 집도의보다 정확한가요?
좁은 조건에서는 그렇습니다. STAR는 돼지 장문합 봉합 간격 균일도에서 숙련 외과의를 앞섰고, SRT-H는 담낭 8건에서 100% 성공률을 냈습니다. 다만 두 성과 모두 출혈이 적고 해부 변이가 통제된 환경이었습니다. 예기치 못한 유착이나 대량 출혈처럼 판단이 필요한 상황에서의 성능은 검증되지 않았습니다.로봇 수술 비용은 왜 비싼가요?
장비 도입가가 다빈치 5 기준 대당 280만\~350만 달러에 이르고, 수술마다 교체해야 하는 전용 기구가 사용 횟수 제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는 대부분 비급여라 환자 부담이 큽니다. 국산 레보아이가 다빈치 절반 수준 가격을 내세우는 배경도 이 구조에 있습니다.자율 수술 로봇이 실수하면 누가 책임지나요?
현재 명확히 정리된 나라가 없습니다. 레벨 0\~1에서는 로봇을 도구로 보아 집도의 책임으로 귀결되지만, 레벨 3 이상에서 로봇이 스스로 판단한 결과에 대해서는 제조사 제조물 책임과 의료진 과실 사이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2017년 사이언스 로보틱스 논문이 자율성 레벨 체계를 제안한 목적 자체가 이 법적 논의의 공통 언어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같이 읽으면 좋은 것들
- 로봇 수술 기술 완전 가이드: 다빈치·복강경 로봇부터 AI 기반 수술 로봇까지 2026년 최신 트렌드
- 로봇 수술 기술이 의료를 어떻게 바꾸고 있나: 2025년 현황과 전망 총정리
- AI 진단 기술이란 무엇인가: 영상의학·병리진단에서 정밀의료까지, 의료 인공지능이 바꾸는 2026년 진료 현장
참조논문
출처
- SRT-H: A hierarchical framework for autonomous surgery via language-conditioned imitation learning, Science Robotics (2025)(ScholarlyArticle)
- Medical robotics—Regulatory, ethical, and legal considerations for increasing levels of autonomy, Science Robotics (2017)(ScholarlyArticle)
- Levels of autonomy in FDA-cleared surgical robots: a systematic review, npj Digital Medicine (2024)(ScholarlyArticle)
- Johns Hopkins teaches robot to perform a gallbladder removal on a realistic patient(NewsArticle)
- 5 robotic surgery trends to watch in 2026, MedTech Dive(NewsArticle)
- SRT-H: A hierarchical framework for autonomous surgery via language-conditioned imitation learning (PMID 40632876)(ScholarlyArticle)
- Levels of autonomy in FDA-cleared surgical robots: a systematic review (PMID 38671232)(ScholarlyArticle)
- Autonomous robotic laparoscopic surgery for intestinal anastomosis (PMID 35080901)(Scholarly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