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혈액은 헌혈을 대체할 수 있을까요?
인공혈액 논의의 출발점은 기술 난이도가 아니라 수급 구조입니다. 국내 혈액 보유량은 적정 기준인 5일분에 미치지 못한 4.3일분 수준이고, O형은 3.2일분, A형은 3.9일분까지 내려간 시점이 반복됩니다. 헌혈의 주력인 10~20대 인구는 줄고 있는데 수혈을 받는 65세 이상은 전체 혈액 사용량의 40% 이상을 차지합니다. 공급과 수요가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구조라서 캠페인만으로는 좁혀지지 않습니다. 세포기반 인공혈액은 줄기세포에서 적혈구와 혈소판을 배양해 이 간극을 메우려는 접근이며, 정부는 2023년부터 3단계로 나눈 개발 사업을 진행해 2037년 무렵 상용화를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목차
- 혈액원 냉장고 앞에서 들은 말
- 인공혈액이란 무엇인가: 두 갈래의 기술
- 배양 적혈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 세계 최초 수혈 임상, 영국 RESTORE
- 한국의 3단계 로드맵과 산업 현황
- 남은 과제: 비용·수율·규제
- FAQ
- 같이 읽으면 좋은 것들
혈액원 냉장고 앞에서 들은 말
몇 해 전 한 대학병원 혈액은행을 취재하며 저장 냉장고를 직접 본 적이 있습니다. 혈액형별로 칸이 나뉘어 있었고, O형 칸이 눈에 띄게 비어 있었습니다. 담당 임상병리사가 말하길, O형은 응급 상황에서 혈액형을 확인할 시간이 없을 때 먼저 나가기 때문에 늘 먼저 바닥난다고 했습니다. 다른 혈액형이 남아 있어도 O형이 없으면 응급 대응 여력이 사라진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냉장고 옆에 붙은 표였습니다. 날짜별로 폐기 예정 수량이 적혀 있었습니다. 적혈구 제제는 보관 기한이 유한해서, 남으면 남는대로 버려집니다. 한쪽에서는 모자라고 한쪽에서는 폐기되는 상황이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수급 불일치가 총량만의 문제가 아니라 혈액형별·시점별 분포의 문제라는 걸 그 표가 보여 줬습니다.
인공혈액이 관심을 끄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배양으로 만드는 적혈구는 혈액형을 선택해 생산할 수 있습니다. O형 RhD 음성처럼 희귀하면서도 응급에 유용한 조합을 필요한만큼 만들어 두는 시나리오가 가능해집니다. 헌혈 총량을 대체하는 그림보다, 가장 부족한 지점을 메우는 그림이 먼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연구자가 많습니다.
인공혈액이란 무엇인가: 두 갈래의 기술
인공혈액(Artificial Blood)은 헌혈에 의존하지 않고 혈액 성분을 확보하려는 기술 전반을 가리킵니다. 접근 방식은 크게 두 갈래입니다.
| 구분 | 세포기반 인공혈액 | 산소운반체(혈액 대체물) |
|---|---|---|
| 원리 | 줄기세포를 적혈구·혈소판으로 분화·증식 | 헤모글로빈 또는 퍼플루오로카본으로 산소 운반 기능만 구현 |
| 결과물 | 실제 세포 | 세포가 아닌 용액 |
| 장점 | 생체 적합성 높음, 혈액형 선택 가능 | 상온 보관·장기 보존 유리 |
| 한계 | 생산 비용과 수율 | 체내 잔류 시간 짧음, 부작용 이력 |
| 국내 사업 방향 | 중심 축 | 보조적 논의 |
한국의 국가 사업은 세포기반 쪽에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공고한 세포기반 인공혈액 제조 및 실증 플랫폼 기술개발사업이 대표적이며, 적혈구와 혈소판 두 가지를 주 대상으로 삼습니다. 과거 산소운반체 계열은 혈관 수축과 심혈관계 이상 반응이 임상에서 확인되며 여러 후보가 중단된 이력이 있어, 세포를 실제로 만드는 쪽이 장기적으로 안전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인공혈액이 해결하려는 문제
혈액 부족은 여러 층위의 문제를 동시에 일으킵니다. 예정 수술 연기, 응급 대응 지연, 희귀 혈액형 환자의 만성적 불안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지중해빈혈이나 겸상적혈구병처럼 정기 수혈이 필요한 환자는 반복 수혈로 동종면역이 생겨 적합한 혈액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배양 적혈구는 항원 구성을 조절할 수 있어 이런 환자군에서 먼저 쓰일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배양 적혈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제조 과정은 대체로 네 단계로 설명됩니다.
첫째, 출발 세포를 확보합니다. 성인 기증자의 말초혈 또는 제대혈에서 조혈모세포를 분리하거나,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를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iPSC는 이론상 무한 증식이 가능해 대량생산에 유리하지만 성숙 적혈구까지 분화시키는 난도가 높습니다.
둘째, 분화와 증식을 유도합니다. 에리스로포이에틴을 비롯한 성장인자를 단계별로 바꿔 가며 적아세포 계열로 밀어붙이는 과정이며, 보통 3주 안팎이 걸립니다.
셋째, 탈핵을 유도합니다. 성숙한 사람 적혈구에는 핵이 없습니다. 배양 과정에서 핵을 빼내는 탈핵 효율이 최종 수율을 좌우하는대, 이 단계가 오래 기술적 병목이었습니다.
넷째, 정제와 품질관리를 거칩니다. 미분화 세포가 남으면 종양원성 우려가 생기므로 제거 공정이 필수이고, 산소 결합 능력과 세포막 안정성이 기준을 충족하는지 확인합니다. 배양 적혈구의 세포막 특성이 헌혈 적혈구와 어떻게 다른지를 분석한 연구가 꾸준히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출발 세포에 따라 갈리는 두 경로
조혈모세포 경로와 iPSC 경로는 성격이 꽤 다릅니다. 조혈모세포는 이미 적혈구로 갈 준비가 된 세포라 분화 효율이 높지만, 한 기증자에게서 얻을 수 있는 양이 제한돼 있어 배치마다 출발 물질을 새로 확보해야 합니다. 반대로 iPSC는 한 번 수립한 세포주를 계속 쓸 수 있어 원료 공급이 안정적이고 품질 편차가 작습니다. 다만 성숙 적혈구까지 도달하는 분화 경로가 길고, 태아형 헤모글로빈이 남는 문제가 보고돼 왔습니다.
산업화 관점에서는 iPSC 경로가 장기 해법으로 꼽힙니다. 세포주 하나를 기준 물질로 등록해 두면 생산 로트 간 동일성을 입증하기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도 임상에 쓸 기준 세포를 확보하려는 시도가 별도 과제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 수혈 임상, 영국 RESTORE
배양 적혈구를 사람에게 실제로 수혈한 첫 임상시험은 영국의 RESTORE 연구입니다. 성인 기증자의 줄기세포로 만든 적혈구를 건강한 참가자에게 최대 10mL씩 투여하고, 같은 기증자의 일반 헌혈 적혈구와 체내 생존 기간을 비교하는 설계였습니다.
용량이 10mL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일반적인 적혈구 제제 한 단위가 200~300mL인 것을 감안하면 치료 목적이 아니라 안전성과 생존 기간을 확인하려는 탐색적 시험이라는 뜻입니다. 관심의 초점은 "배양 적혈구가 헌혈 적혈구보다 오래 사는가"였습니다. 헌혈 혈액은 다양한 나이의 적혈구가 섞여 있어 평균 수명이 짧아지는데, 배양 적혈구는 모두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 이론상 수명이 길 수 있습니다. 수명이 길면 수혈 간격을 늘릴 수 있고, 정기 수혈 환자의 철 과부하 부담도 줄어듭니다.
RESTORE는 마지막 배치 생산까지 마치고 결과 분석 단계로 넘어갔습니다. 아직 임상적 유효성을 입증한 단계는 아니지만, 사람에게 투여 가능한 수준의 배양 적혈구를 생산하고 규제 기관의 승인 아래 수혈했다는 사실만으로 분수령으로 평가됩니다.
한국의 3단계 로드맵과 산업 현황
국내 사업은 5년씩 세 단계로 설계돼 있습니다.
| 단계 | 기간 | 주요 목표 |
|---|---|---|
| 1단계 | 2023~2027년 | 생산기술 확보, 프로토콜·시제품 마련 (16개 과제, 450억 원 규모) |
| 2단계 | 2028~2032년 | 제조공정 플랫폼 구축, 표준 공정기술·품질관리 기준 확립 |
| 3단계 | 2033~2037년 | 대량생산과 수혈 본격 시행, 규제 기반·혈액안전관리체계 확립 |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가 함께 참여하는 다부처 구조입니다. 혈액 제제는 의약품이자 혈액관리법의 적용을 받는 특수 영역이라, 제조 허가와 혈액 안전관리 체계를 동시에 손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업 쪽에서는 아트블러드가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됩니다. 50리터 규모 세포배양기에서 대량 생산하는 기술을 확보했고, 2024년에는 반려견용 혈액을 세계 최초로 생산했습니다. 경기 안산에 GMP 공장을 착공했으며 2027년 FDA 임상 1상 신청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 대웅제약, 듀셀바이오, 파미셀 등이 적혈구와 혈소판 영역에서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반려견 혈액이 먼저 나온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동물 혈액은 수혈용 공급망 자체가 거의 없어 미충족 수요가 크고, 규제 장벽이 사람 대상보다 낮습니다. 기술을 검증하면서 매출을만드는 경로로 활용되는 셈입니다.
남은 과제: 비용·수율·규제
가장 큰 장벽은 비용입니다. 적혈구 한 단위에는 약 2조 개의 세포가 들어 있습니다. 실험실에서 수 밀리리터를 만드는 것과 한 단위를 만드는 것 사이에는 수백 배의 간격이 있고, 그 간격이 곧 배양액과 성장인자 비용으로 환산됩니다. 배양액 성분 중 상당수가 고가 재조합 단백질이라 원가 절감이 쉽지 않습니다. 성장인자를 소분자 화합물로 대체하거나 배양액을 재순환시키는 공정 연구가 원가 문제의 핵심 전선이 된 이유입니다.
수율도 과제입니다. 탈핵 효율, 분화 단계별 세포 손실, 배양 기간 단축이 모두 수율에 직결됩니다. 생물반응기 규모를 키우면 단위당 비용은 내려가지만 세포가 받는 물리적 전단응력이 커져 손상이 늘어나는 문제가 뒤따릅니다.
규제 측면에서는 분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배양 적혈구는 세포치료제인지 혈액 제제인지에 따라 심사 경로와 품질관리 기준이 달라집니다. 국내에서도 세포기반 인공혈액을 어떤 법 체계 안에 놓을지에 관한 논의가 진행 중이며, 3단계에 규제 기반 확립이 포함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종장기 이식이 감염 관리와 윤리 심의라는 별도 관문을 마주한 것과 비슷한 구조입니다.
여기에 물류 문제가 하나 더 붙습니다. 헌혈 혈액은 전국 혈액원 네트워크와 냉장 유통 체계가 이미 깔려 있지만, 배양 적혈구는 생산 시설이 소수에 집중될 수밖에 없어 공급 경로를 새로 설계해야 합니다. 주문에서 투여까지의 시간, 배치 단위 품질 검사, 사용하지 않은 제품의 회수 기준 같은 실무 규칙이 상용화 직전 단계의 실질적 관문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기술이 완성돼도 제도와 물류가 따라오지 못하면 병상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는 점은 세포치료제 전반이 이미 겪어 온 문제입니다.
FAQ
인공혈액이 나오면 헌혈은 필요 없어지나요?
가까운 시일 안에는 그렇게 되기 어렵습니다. 정부 로드맵도 2037년 무렵 상용화를 목표로 삼고 있고, 초기 적용 대상은 희귀 혈액형이나 반복 수혈로 적합 혈액을 찾기 어려운 환자군이 먼저 거론됩니다. 당분간은 헌혈이 주 공급원으로 남고 인공혈액이 부족한 지점을 보완하는 형태가 현실적입니다.배양 적혈구는 헌혈 혈액보다 안전한가요?
장점과 과제가 함께 있습니다. 기증자 유래 감염원 전파 위험이 낮고 혈액형과 항원 구성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입니다. 반면 배양 과정에서 미분화 세포가 남을 가능성, 배양액 성분 잔류, 세포막 특성 차이 같은 새로운 검증 항목이 생깁니다. 임상시험이 안전성 확인에 집중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혈소판도 배양으로 만들 수 있나요?
연구가 함께 진행되고 있고 국내 사업도 적혈구와 혈소판을 동시에 대상으로 삼습니다. 혈소판은 보관 기한이 5일 안팎으로 매우 짧아 수급 압박이 적혈구보다 심한 편이라 실용화 요구가 큽니다. 다만 거핵구에서 혈소판을 떼어 내는 과정의 수율이 낮아 기술적 난도는 적혈구 못지않습니다.산소운반체 방식은 왜 주류가 아닌가요?
헤모글로빈 기반 산소운반체는 상온 보관이 가능하고 혈액형 구분이 필요 없다는 강점이 있었지만, 과거 임상에서 혈관 수축과 심혈관계 이상 반응이 보고되며 여러 후보가 개발을 중단했습니다. 최근에도 연구는 이어지고 있으나 대규모 수혈 대체보다는 특수 상황용 보조 수단으로 논의되는 편입니다.비용은 언제쯤 현실적인 수준이 될까요?
현재 실험실 생산 단가는 헌혈 혈액과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관건은 배양액과 성장인자 원가, 생물반응기 규모 확대, 자동화 공정입니다. 국내 로드맵이 2단계에서 제조공정 플랫폼과 표준화를 목표로 잡은 것도 이 원가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3단계 대량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같이 읽으면 좋은 것들
- 이종장기 이식(Xenotransplantation)이란 무엇인가: 돼지 신장 임상부터 eGenesis·Revivicor FDA 승인까지 2026 장기 부족 해법 완전 가이드
- 줄기세포 유래 췌도 이식이란 무엇인가요? 지미슬레셀(VX-880)로 인슐린을 끊는 2026 1형 당뇨 세포치료 완전 정리
- 3D 바이오프린팅(3D Bioprinting)이란 무엇인가: 인공 장기·조직 재생부터 약물 스크리닝까지 2026 재생의학 완전 가이드
참조논문
출처
- 두쫀쿠까지 동원한 '헌혈 절벽', 인공혈액 생산 어디까지 왔나 (비즈한국)(NewsArticle)
- 5년씩 3단계 거쳐 2037년 인공혈액 상용화 도전 (메디게이트뉴스)(NewsArticle)
- World-first clinical trial sees BioResource volunteers receiving transfusion of laboratory grown red blood cells (NIHR BioResource)(Report)
- Final batch of red blood cells produced in RESTORE (NIHR BioResource)(Report)
- 인공 적혈구 임상에 쓸 기준 세포를 만든다…아트블러드, 스케일업 팁스 선정 (벤처스퀘어)(NewsArticle)
- Production of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Derived Red Blood Cells (2026)(ScholarlyArticle)
- Membrane Properties of Human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Derived Cultured Red Blood Cells (2022)(ScholarlyArticle)
- Generation of red blood cells from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s (2024)(ScholarlyArticle)